-
[문학산책 좋은 시 7] 스위치삶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. 암전 속에서도 눈 위에 찍힐 발자국을 기다리는 마음, 스위치는 어쩌면 한 사람의 어둠을 밝혀주는 따뜻한 관심인지도 모른다. AI생성이미지 [chatGPT] 스위치 류 봉 희 처음 빛을 보았을 때 보듬어 주는 손길이 필요하고 해 질 녘으로 접어들 때 다시 잡아줄 손길이 필요하다 이미 빛을 보고 있으나 보듬어 주는 손길이 닿았고 이제는 해가 질 듯하니 또 다른 손길이 필요하다 언제 닿을지도 모르는 기다림을 암전 속에서 끊임없이 기다리며 눈 위에 찍힐 발자국을 생각한다 삶이 평행 이동하여 내 곁으로 왔다 스위치는 늘 거기에 있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류봉희 시인은 2012년 ≪한국미소문학≫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. 시집 『돌 세공하듯』, 『걷자 걷자꾸나』, 『생각의 차이』를 펴냈으며, 한국미소문학 본상, 제66회 한국인터넷문학상, 천안문학 우정상을 수상했다. 현재 한국미소문학 충청지회장과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,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6] 그리움의 지도뒤에 남은 것들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 사람뿐이겠는가, 담장에 기대선 자전거도, 어린 등을 밀어주던 아버지의 손도 모두 그리움의 목록에 들어있다. 시인이 '그리움의 지도' 라고 적어둔 유년의 풍경이 그림처럼 환하다. AI생성이미지 [chatGPT] 그리움의 지도 서 미 경 담쟁이넝쿨 우거진 담장에 기대선 세발 자전거 녹슨 몸을 버티며 반짝이는 페달 하나 손때 묻은 안장은 시간의 기억을 적고 있는데 자전거를 잡아주던 손은 바람의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투명한 힘이 되었다 아직도 나는 균형을 배운다 삶은 언제나 언덕이고 길은 때때로 사라지는 미로여서 두 발 자전거 대신 네 발 자동차를 몰며 가끔은 미끄러지는 기억의 굴헝에서 시간의 체인을 다시 걸고 무릎에 남은 흉터를 그리움의 지도라고 부른다 “괜찮아 넘어지면 다시 타면 되니까” 지도 끝에서 우렁우렁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서미경 시인은 2014년 천안문인협회 민촌백일장에서 장원을 수상했으며, 2021년 ≪작가와 문학≫ 신인상을 받았다. 시집 『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』(북인)을 펴냈고, 공저 『무릎이라는 몽돌』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.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과정을 수료했으며, 현재 천안문인협회 회원이자 바람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5] 허수아비의 죽음죽음은 늘 뜻밖이고 허무하고 서럽다. 아버지의 중절모를 눈물로 바라보는 화자의 애절이 가슴을 적신다. 이제 당신은 저쪽으로 옮기시라고 사망신고 라는 마지막 작별을 머뭇거리며 심장이 타버렸다는 뜨거운 울음을 담담히 적어두는 슬픔을 함께 운다. AI생성이미지 [chatGPT] 허수아비의 죽음 윤 경 상 추수 끝난지 오래인 밭 한가운데 아버지가 서 있다 집 나온 지 오래여서 세상 소식이 닿지 않아 수수밭 고랑을 겅중거리는 고라니나 바라보며 관절이 무너졌다는 근황을 모른 척 한 다리로 버티던 지난 시간 뭉쳤던 구름들이 흩어지고 계절을 휘저어 뒤섞어 놓는다 쏟아진 추억들을 주워 담는 등 뒤에서 억새풀 쓸데없이 서걱거린다 심장이 다 타버렸다는 불길한 소문들이 무성하고 멀리 갔던 새들의 울음이 공중을 떠돈다 사망신고는 언제 하지 면사무소는 어디인가 한 번도 가본적 없는데 읍내 장터에서 사 온 중절모는 어디다 걸어야 하나 바람도 없는데 문짝이 자꾸 덜컹거린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윤경상시인은 바람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과정을 수료했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4] 소심한 복수그렇지요, 모른 척 못 본 척 함께 가는 길이 부부의 길 일테지요. 일상을 공유하며 가끔 어긋나기도 하는 원숙한 부부의 실체가 다정하고 따듯합니다. 오늘 저녁 공연히 식탁 의자를 툭 툭 건드려 보는 이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. AI생성이미지 [chatGPT] 소심한 복수 원 종 혁 현관문 앞에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을 툭툭 차서 한쪽으로 몰아붙이고 혼자 씩 웃는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소심한 복수이다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부엌을 누비며 깨끗하게 치워둔 식탁 그가 아끼는 자리에 밀어둔 새빨간 거짓말 멀쩡히 서있는 물컵을 툭 치고 반듯한 식탁의자를 옆으로 휙 밀어둔다 속으로는 좋아죽으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껄껄껄 웃는다 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같은데 그렇게 모른 척 못 본 척 우리는 기우뚱거리며 걸어간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원종혁 시인은 강원도 철원 출생으로, 목원대학교와 루지애나대학교(Ph.D)를 졸업했다. 2014년 《문학사랑》으로 등단했으며, 시집으로 『너무 잘 익은 것들은 가끔 서럽다』 등이 있다. 홍완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, 천안문인협회와 바람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. 현재 목사이자 교수로 활동하며, 오랫동안 명상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3] 아주 큰 배가 서울역에결혼 이라는 배에 태우는 자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일렁이다가 글썽이다가 마침내 '시도 때도 없이 웃는' 이유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'재래식'에 함께 웃어 봅니다. 파도 없는 바다가 있겠습니까, 그저 둘이 힘차게 헤쳐나갈 노 한 자루 건네 줄 뿐이지요. AI생성이미지 [Gemini] 아주 큰 배가 서울역에 이 명 열 몸짓만 큰 난파선인 줄 알았던 배가 서울스퀘어* 밀실에 들어섰습니다 ‘나는 재래식 인간입니다’ 손바닥만한 원탁을 싸안고 아이들은 재래식 인간들 때문에 웃지도 못합니다 시간을 잘라 만들었을 음식 앞에서 무장한 웃음이 실없이 터집니다 저 큰 배에 인생을 싣고 와서 풀어 놓는 짐 속에 아끼던 보석 하나를 건네는 일이라니 밀가루 포대처럼 주저앉는 등받이들이 재래식에 머물며 꼬깃꼬깃 품었던 묘목에 이제 막 벙그는 꽃 한 송이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담이의 얼굴에 인해의 얼굴을 묻고 불을 피워 총총 먼 바다로 나가는 배 한 척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*서울역사 상견례장으로 알려진 음식점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이명열 시인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202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했다. 시낭송가이기도 하며 시집으로 『양철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』. 2023년 홍완기문학상을 수상했다. 현재 나사렛대학교평생교육원과 충남평생교육원에 출강 중이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2] 그래서 봄비가 싫어어머니의 죽음을 봄이라는 계절에 포개어, 말로 다 담지 못한 마음을 툭툭 내뱉듯 건넨다. 화분 속 떡갈나무에게 말을 걸며 "너는 어떠냐?"고 묻는 시인의 목소리는 쓸쓸하고 고요하다. 찬물 한 그릇을 권하는 마지막 행에서, 위로의 깊이를 조용히 일깨운다. 그래서 봄비가 싫어 박 미 라 돌아간 후에 열어보라고, 별것도 아니라고, 마른 입술을 어린 꽃봉오리처럼 툭툭 터뜨리며 뭉치고접고다지고두드린 밤도 아침도 창문도 무지개도 다 들었다고 봄비 속에서 천둥이 운다 마침내 꽃은 피고 불현듯 바람 불고 미처 다 알아듣지 못한 것들을 봄비라고 싸잡아 부르면서 봄 쪽으로 팔을 뻗는 화분 속 떡갈나무에게 사는 게 그렇지 우리 엄마도 죽었단다 봄이었어 죽기 좋은 계절이지 너는 어떠냐? 찬물이나 한 그릇 권한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박미라 시인은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. 시집으로 『죽음의 쓸모』 외 다수, 산문집으로 『유랑의 뼈를 수습하다』 외 다수가 있다. 지리산문학상, 서귀포문학상대상, 천안문학상, 대전일보문학상본상, 충남시인협회상본상을 수상했다.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, 아르코창작기금(2회), 충남문화관광재단창작지원금(5회)을 받았다. 우수도서선정(2회)이 있다. 현재 나사렛대학교평생교육원에 출강 중이다. -
[문학산책 좋은 시 1] 겨울 강가에서겨울 강가의 얼음 풍경에서 시작해, 차가운 도시의 현실과 외면의 시간을 함께 비추는 시다. 이계섭 시인은 차가운 계절의 이미지 속에 우리 사회의 쓸쓸한 풍경을 겹쳐 놓는다. 겨울 강가에서 이 계 섭 입춘이 코 앞인데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쩡쩡 우는 강물 위에 설국이 세워졌다 맨몸으로 겨울을 헤엄치는 생명들 강물은 제 몸을 얼려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벗은 것들이 제 몸을 기댄다 솜이불 한 자락 온기 한점 나눈 적 없는 서울역 지하도에 헤엄을 멈춘 물고기들 젖은 종이박스처럼 덜마른 생선처럼 널브러져 있다 파도를 핑계로 돌아보지 않는 바다는 한치의 얼음조차 적선하지 않는 또 하루를 건너간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시인소개 이계섭 시인은 『작가와 문학』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, 제2회 『청양문학상』을 수상했다. 시집 『나는 나무처럼 서 있었다』를 펴냈고, 공저로 『무릎이라는 몽돌』, 『낮달처럼 떠간다』가 있다. 현재 현대시학회, 김수영문학회, 바람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.
